입장에 있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? 그렇게 말해도 좋으면 조부모는
"무책임"한 입장에 있다. 부모가 아이를 귀엽다는 생각이 들 경우,
그것은 그대로 "이 아이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자"라고 하는 생각에 연결된다.
싫어도 해야하는 일이 많이 있다. 그것은 일이나 육아에 쫓겨서
아이의 귀여움을 느낄 뿐이어서는 지낼 수 없는 일상이기도 한다.
그런 부모에 비교하면 할아버지, 할머니는 정말로 마음이 편한 비당사자(非当事者)다.
열심히 하자고 해도 그것을 다 하는 체력도 없다. "귀엽다"라고 말로만 하고 있으면 좋다.
그리고, 그래서 좋다고 생각한다. 굳이 말한다면 할아버지, 할머니에게는 "무책임"이라는
"역할"이 있다. 손자가 부모에게 야단맞다면 할아버지, 할머니 집으로 도망쳐 오면 좋다.
조부모는 그 손자를 "무조건" 받아들일 것이다.
손자가 귀엽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밖에도 있는 것 같다.
나는 50대에 들어갔을 때부터 어린 아이를 보니 "귀엽구나"라는 느낌이 들게 되었다.
마침 그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. 또 그 때 나도 수술을 받아서
사람의 생(生)이나 사(死)에 대해서 전보다도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.
아마 내가 어린 아이에게서 ”생명"을 선열하게 느낄 때 자신의 약해지려 하고 있는
"생명"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. 두개의 생명이 공진(共振)하고 있다.
어린 아이를 "귀엽다"라고 보고 있을 때 자신이 남겨진 인생을
사랑스럽게 느끼고 있는 자신이 있다. 내가 손자를 안고 있을 때
거기에 있는 생명도 거기에 없는 생명도 동시에 느끼고 있을 것이다.
멀리에서 긴 여행을 해온 존재와 머지않아 영원한 여행을 떠날 존재가
말따위 필요도 없고 대화를 하고 있다.
손자는 정말 귀엽다.
출처 : http://blog.daum.net/t_arirang/18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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